조시] 그대는 뜨거운 사랑이어라, 복음이어라
조시] 그대는 뜨거운 사랑이어라, 복음이어라
서덕석목사(열린교회, 시인)
그대는 나보다 딱 한 해 하고도
일주일 늦게 이 땅으로 보냄을 받았고
신학도 한 해 늦었으니 후배 일 세,
하지만 이제 그대는
나보다 먼저 주님 앞으로 돌아갔으니
나의 선배가 된 것인가, 이 사람아!
스무 해를 입으로 주를 증거 하기보다는
예수처럼 살기를 원했던 그대는,
군포공단의 굴뚝들이 품어내는
시커먼 연기를 마시며
주님이 갈릴리를 못 떠나시듯
썩은 물 흐르는 당정천 옆을 떠나지 못한 것인가,
그래서 몸마저 함께 썩어야 했는가, 이 사람아!
아홉 달을 코피 흘리면서
현장 노동자들과 부대끼던 노동훈련을 마쳐야 했을 때,
그들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었듯이
이 땅에 우리들만 남겨두고 떠나는 게
아쉽지는 않은가, 야속한 사람아!
언젠가는 주님앞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가끔씩 잊고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가르쳐 준 그대,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것보다, 잘 죽기위해,
겸손히 주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는 삶이
더욱 처절하고 값진 시간임을 가르쳐 준 그대,
하지만 그 사람이 왜 하필
그대여야 하는가, 이 사람아!
아아, 그대는 가난한 민중들의 친구,
힘없고 가진 것 없이
세상에 내 던져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민중선교에 인생을 걸었던 목사,
<한무리 공동체>와 <일하는 예수회>를
안방처럼 여겼던 사람!
겨울 어느 날, 지리산 한화콘도 수련회서
아픈 몸을 이끌고 나타나
흐트러지고 나약해진 우리들을 향해
"나처럼 아픈 사람 말고 다 나오라고 해!"
하고 일갈한 자네 말을 전해들은
귀먹은 나 서석덕은
정신이 번쩍 들어 그 뒤로는
우리회의 모든 모임에 무조건 다 나간다네, 이 사람아!
목사면 목사답게
주님앞에 가서 변명거리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섬기고 나누는 것에 필요한 것 외엔
아무것도 갖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써서
떠날 때도 그렇게 홀가분하게 가버렸나, 이 사람아!
그대는 갔어도
우리들은 그대를 차마 이대로 보낼 수 없구나,
우리는 그대에게 별로 힘이 되어 주지 못했건만
주님을 직접 대면하고 있을 그대에게
염치없이 부탁하고 싶은 것도 많다네,
민중들 가운데서 함께 부대끼는
우리들의 아픔, 우리들의 외침, 우리들의 기도......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 이 사람아?
아아, 최주상목사,
그대는 뜨거운 사랑이어라,
사랑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그대를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살게 했을까,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그대가
외롭고 가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었을까.
그대는 복음이어라
그대가 남긴 모든 것에서 주님의 향기를 맡으니
우린 기뻐하며 자랑스럽게 그대를 보낼 수 있다네,
그대가 남긴 민중선교의 사명을 이어받아야 할
우리에게 그대는 스승이어라,
진짜 참 목사, 거짓 없는 동지여라.
이 땅의 민중들처럼
몸으로 사는 동안 부대끼며 쉬지 못한 그대,
이제 지친 몸 주께 맡기고 편히 쉬시게,
주님 앞에서 다시 만날 그때까지,
이 사람아!
(8월 15일 주상이 형이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