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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대들에게, 리영희의 <대화>를 권함[펌]

강현만 2010. 12. 7. 22:14

젊은 그대들에게, 리영희의 <대화>를 권함
[논단] 실증주의적 과학적 태도의 전범, 한국현대사와 리영희의 ‘대화’
 
황진태
슈퍼주니어는 알지만 리영희를 모르는 세대
 
“오늘날 젊은이들은 13명인 가수 슈퍼 주니어의 이름은 알더라도 리영희는 모른다. 몇 해 전 NLL 논란 당시 MBC <미디어비평>에 리영희 선생이 출연하여 열변을 쏟으셨다. 당시 그가 한 말은 귀에 안 들렸다. 그의 손에서의 미묘한 떨림과 건조한 입술과 푹 패인 주름살과 새하얀 머리카락에만 동공이 반응하고 가슴이 섭동되었다.”(<대자보>2006.8.19)
 
작년에 필자가 한 매체에 기고했었던 한국의 대학생들을 비판했던 기사의 일부분이다. 당시 TV에 출연했던 리영희 선생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러한 긴장감에 시달렸는데 하물며 전집이 나오게 됐으니 얼마나 가슴이 뛰겠는가.
 
최근에 들어 한국의 지식인들 중에서 ‘전집’으로 기획된 사례로서 박현채 선생과 함께 리영희 선생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다. 기존의 서양 지식인 일편의 전집, 가령 MEW(맑스,엥겔스 전집)만을 책장에 모셔놓다가 이러한 한국정치사회지형에서 일궈낸 전집을 마주할 때의 감격은 사회과학도로서의 공부에 대한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된다.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열린 <대화> 출판기념, 독자와의 대화에서 강연중인 리영희 선생     ©대자보
전집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리영희의 저서들을 탐독했었고, 1988년에 자전적 에세이 <역정>이 나왔지만, 7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기록된 이번 <대화>는 역정과는 또 다른 빛깔을 뿜어낸다. 특히, 지금까지의 차가운 이성에 기반한 저서들과 달리 구어체로 되어서 국제정치이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감싸고 있는 바탕을 알 수 있게 된 점이 백미다. 또한 리영희의 장고한 삶을 추적하고, 기억을 일깨운 임헌영 선생의 수고가 빛나는 인터뷰집으로 근래 지승호의 인터뷰 이후에 보기 드문 치밀한 인터뷰였다.
 
리영희의 외국어 실력은 시대적 배경이 낳았다 
 
얼마 전 홍세화 선생의 강연회가 동국대에서 했었는데 그는 오늘날의 대학생들의 무식함을 지적하면서 리영희 선생의 어린 시절은 일명 ‘데칸쇼’(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 세대이며, 자기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소위 ‘데미안적 고뇌’정도의 개똥철학은 있었다고 말한 게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에 리영희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공부했고, ‘조금’ 뛰어난 머리로 일본인이 다니는 학교에 진학하여 대등하게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리영희가 중고등학교 시절 ‘데칸쇼’를 알았던 것은 일본의 사상유입이 조선으로도 전도된 것이다. 물론 자평하듯이 ‘조금’ 뛰어난 머리가 뒷받침이 됐겠지만 이후 한국전쟁 당시에는 통역장교로 복무하면서 영어까지 늘게 된다. 이러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의해서 그의 외국어 실력이 늘게 된 것이다. 이는 뒤에 그가 국제문제분석에 탁월한 토대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지만 내가 그러한 시대를 살면서 외국어를 능수능란하게 하느니 차라리 현재의 평안한 정국에서 토익까지고 낑낑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러 매체에서 재차 강조했지만 이러한 평안한 세상이 결코 대학생들의 보수화 혹은 무지에 대해서 면벌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들은 정말 무식하다. 
 
그의 글쓰기를 관통하는 실증주의적, 과학적 태도 

▲2003년 3월 국회 앞에서 파병반대시위가 열리자  비판의 목소리를 높힌 리영희 선생     © 대자보
 
<대화>에서 종종 리영희가 밝히듯이 그는 문학을 많이 접하지는 못했다. 이 점이 그의 글쓰기에 감성적인 것보다는 차가운 이성적 글쓰기가 돼버린 거 같다고 밝힌다. 그러나 개인적으로야 글쓰기에 좀 더 감성이 있었으면 하는 사사로운 아쉬움은 남을 지 언정 이러한 글쓰기는 이후의 사회과학적 글쓰기의 전범이 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훌륭한 글쓰기이리라.
 
“문화적 편협성은 우리 남한 사회가 해방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광적인 반공주의와 극우 폐쇄사상의 결과로 얼마나 많은 문명적, 문화적 후퇴를 겪어야 했던가 하는 사회 경험의 본보기가 되지요. (중략) 사상적 자폐증은 곧 자살이오.”(51쪽)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남한의 적지 않은 인사들이 지녀왔던 전쟁책임론에 대해, 진실이 밝혀진 뒤까지도 자기의 희망이나 선입관을 너무 고집하는 것은 지식인의 과학적 태도가 아니라고 봐요.”(114쪽)
 
임헌영과의 인터뷰 도중에도 리영희는 당시의 비밀문서 자료들을 가져오는 부지런함을 목격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보수적이게 된다거나, 나이가 들면 심장이 여전히 왼쪽에서 뛸지를 장담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경외할 수밖에 없는 자세이다. 
 
종교에 관해서 특히 한국종교
 
얼마 전 동국대와 숭실대의 종교 동아리 불인정과 관련한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다가 마음고생을 무진장 했었다. 그래서 다시 읽은 <대화>의 다음과 같은 종교에 대한 서술이 마음에 와 닿는다. 먼저 그의 신과 영혼에 대한 정의를 들어보자.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이 현실의 생존 조건에서 겪는 생로병사의 고통과 좌절, 슬픔, 그리운 이와의 영원한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과 어디선가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의 간절함 등을 인간적 운명의 한계를 넘은 어딘가에서 위로와 보상받고, 괴로움과 쓰라림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에서 ‘신’이라는 기능적 존재를 상정했다고 생각해요.”(489쪽)
 
“소위 ‘영혼’이라는 문제에서도, 그것은 인간의 생물적 활동 기간의 현상이며, 생물적 기능의 종식과 동시에 영혼이라고 불리는 속성은 종식되는 것으로 생각해.”(492쪽) 
 
동국대측은 왜 종교동아리를 불허하는가에 대해서 건학이념을 둘러댔다. 숭실대는 왜 종교동아리를 불허하는 가에 대한 질문에 동국대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답변이었다. 훌륭한 ‘뫼비우스의 띠’다. 이 사이에 끼인 타종교를 믿는 재학생들의 양심만이 생채기가 날 뿐이다.
 
나 또한 기독교의 반공주의, 보수화에 대해서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써왔지만 이번 사태를 경험하면서 불교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삶의 현실을 가장 슬기롭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길잡이가 예수의 가르침이고 부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한도 내에서. 나는 예수의 신자이고 부처의 신도인 것이다. 예수를 믿어야 천당 간다거나 부처를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식의 예수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 신도도 아닌 대신, 위대한 두 분을 동시에 한꺼번에 마음 속에 귀히 모시려는 것이다.”(491쪽)
 
오늘날의 한국종교에서 각기 모시는 성인들은 리영희의 예수, 부처가 아닌 교조화된 우상에 가깝다.  
 
민족주의는 교조화 되었는가?
 
“나는 우리의 지나간 역사적 사실과 현상들의 해석에서도, 기성의 이데올로기화된 이론이나 학설 또는 ‘자민족을 미화하는 편향’에 대해서는 좀더 자유롭고 융통성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238쪽)
 
“자기 민족의 허물은 비단 보자기로 덮어두고 상대방의 행위만을 극악하게 그려내는 것을 나는 반대해요. (중략) 나는 자기비판을 겸하지 않은 타자비판만으로는 자칫 지난날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하는 사람이에요.”(563~564쪽)
 
종교문제와 함께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교조화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이 요즘 들어서 늘어났다. 리영희가 말하듯이 자기비판의 중요성은 칸트로부터 시작하는 서양 근대철학의 ‘계몽의 계몽’, ‘이성의 이성’을 이르는 말일테다. 최근에 위안부 관련 발언으로 곤혹을 겪었던 세종대 박유하 교수에 대한 따가운 여론에도 이러한 자기비판이 결여된 게 아니냐는 질문은 유효하다. 박유하는 임지현 수준의 포스터모더니즘 역사학을 차용하여 그렇다면 국사 해체 이후에 공허한 공간을 띄우는 임지현과는 달리 위안부 문제 등의 실질적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서 우리 안의 치부도 역사의 샬레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리영희의 말대로 ‘자칫 지난날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민족주의에 대한 중간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가 기우는 것은 남이 나라를 무너뜨리기에 앞서 그 나라의 군신이 스스로 먼저 나라를 기울게 했기 때문이다.”(563쪽)는 중국의 옛말을 인용한 리영희의 논지에 적극 동감한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책을 읽을까
 
홍세화도 몇 년 동안 강연회마다 지적하는 바지만 한국의 대학생들은 정말 무식하다. 가령 동국대만 하더라도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초대총장이 노골적 친일파 권상로였다는 사실이나 개교 백주년 기념시를 서정주가 썼다는 것에 자랑하는 것에 대해서 자국의 젊은이에게 카미카제 특공대가 되라는 선동시를 쓰고, 박정희, 전두환으로 넘어가며 권력에 흡착하는 카멜레온적인 삶을 살았던 서정주의 다른 면은 그 특유의 유미주의적 탐미적 시에 눈이 빼앗겼다. 강정구 사태가 얼마나 촌스러운 사태인지는 알고 있을까?
 
고작 공부한다는 것은 전공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이들의 공통서적은 토익 문제집이다. 어디 동국대뿐이겠는가. 먹고 사는 게 바빠서라는 것은 나는 핑계라고 생각한다. 양극화를 적어도 완화시킬 수 있는 한미FTA 반대 시위에 나갈 생각은 못하지만 FTA 체결이후에 강화된 양극화에서 잘사는 일부에 붙으려는 고난의 행군에는 ‘올인’한다.    
 
▲한국현대사의 증인이자 독재정권에 저항한 지식인의 사표, 리영희 선생     © 대자보
리영희는 7년간의 군 시절에서, 전투에서도 책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리영희의 회고를 읽으면서 나 또한 여전히 독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비트켄슈타인은 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논리철학논고>라는 기존 언어철학의 틀을 뒤집어버리는 명저를 썼다. 우리가 리영희의 책을 읽을 때는 가령 이 <대화>만 하더라도 분량이 많다는 푸념이 나온다면 정말 무식이 줄줄 흐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계몽(enlightenment)”이라는 말이 거북하더라도 오늘날의 몽매한(unenlightened) 젊은이들의 머릿속에 빛(light)을 넣는(en)데 고리타분한 독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상을 깨려면 제대로 알고서 깨야
 
윤평중이 얼마 전 <비평>에다가 리영희를 비판한 글을 썼다가 <한겨레>에 홍윤기와 강준만의 반론이 바로 실렸다. <조선일보>에서도 리영희를 비판하는 글을 어설프게 썼다가 <한겨레> 논설위원이 다시 비판했다. 이상하게도 다른 매체(경향, 오마이 등)에 비해서 <한겨레>가 리영희에 대해서 민감하게 대응을 했다. <한겨레> 창간에 있어서 리영희 선생이 관여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 나로서는 <대화>에서 <한겨레신문>의 창간 뒷 얘기를 읽게 되어서 무척 반가웠다.(615~617쪽) 리영희의 말을 그대로 따보겠다. 재밌는 정경이 떠오른다.
 
“어느 날 강남 어딘가의 대중사우나 휴게실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의논을 했어. 진정한 민주주의를 표현하고 민중의 뜻과 희망이 반영되고, 구태에서 벗어난 통일지향적이고 혁신적인, 그것도 신문값이 싼 신문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이야기를 했지요.”(615쪽)
 
<한겨레> 창간일이 내 생일과 같다는 억지에 가까운 유사점에서 뿐만 아니라 한미FTA 특히 투자자-국가소송제와 관련하여 필자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관료간의 수차례 논쟁을 할 수 있었던 지면이 <한겨레>였음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한겨레>에 대해서 이제는 비판받을 점이 명백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겨레>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최소한 리영희 선생에 대해서만큼은 발 빠르게 대응한 <한겨레>에 감사한 마음이다.
 
본서의 제목인 <대화>는 리영희 선생과 임헌영 선생과의 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부독재정권 시절을 겪었던 리영희 선생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오늘날의 젊은이 세대뿐만 아니라 수십, 수백 년 후의 후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대화’가 될 것이다. 본서의 일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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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6/05 [00:19]  최종편집: ⓒ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