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
추첨제를 매개로 진보진영대통합에 나서자
강현만
2021. 8. 6. 16:54
추첨제를 매개로 인민(국민)을 주인으로 진보진영(정당) 대통합에 나서자.(대선후보니 뭐니 하는 허황된 그림은 이제 그만 그릴 때가 되었다)
대선을 앞두고 수구 국힘과 보수 민주당이 아닌 진보정당이라는 동네에서도 대선 출마 준비가 한창인가 보다.
출마의 근거는 대충 ‘진보정당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당원도 좀 늘고 지지율도 오르면 금상첨화다.
문제는 이런 바람이 전형적인 자기 착각,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대선이라고 해서 유세차량 몇 개 돌리고 홍보물 조금 날릴 수는 있다. 딱 거기까지다. 방송을 비롯한 일간지 등 언론에 보도는 기대할 수 없다. 고로 대중에게 홍보는 사실상 기대난망이다.
당원이 느는 것도 희망사항이다. 지지율도 오르지 않을 것은 너무 뻔하다.
진보정당이라는 동네에서 대선 후보를 내는 것은 한 마디로 당원들 등골 빼먹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세상을 바꾸자고 진보정당 하는 것 아닌가? 인민의 이익을 위해 진보정당 하는 것 아닌가? 피 같은 당원들 등골이나 빼는 짓을 왜 하는가?
지금과 같은 진보정당의 모양을 유지하려면 당을 해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운동단체로서 역할 하는 것이 훨씬 가성비가 높다. 꼭 당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정파(그룹)의 유지는 당이 아니어도 된다.
무슨 잔챙이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무엇을 위해 당을 유지하고 대선 출마의 깃발을 든단 말인가?
정파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진보정당이 아니라면 진보진영(정당)대통합에 나서야 한다. 지금 할 일에 최우선은 대통합을 위한 일에 나서는 것이다. 하나도 둘도 셋도 이를 위한 일이다.
서구나 여타 국가의 다양한 좌파 정당의 사례와 역사는 우리와 다르다. 오랜 시간 좌파진영의 투쟁과 축척을 통해 집권당, 제1야당 등 과정을 가진 국가와 우리는 사례와 비교가 어울리지 않는다.
진보대통합의 열쇠가 있다. 바로 추첨제다. 직접민주주의다. 당의 직접민주주의 실현이다. 선거제가 아닌 추첨제의 도입이다. 빌어먹을 자본제로서 선거제를 취하기에 온갖 더러운 이전투구와 갈등, 분열과 상처, 후유증으로 파산한다.
솔직히 함 말해보자.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중에서 누가 하면 어떤가? 무슨 차이가 얼마나 있는가? 당내 주인으로서 당원들의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는 토대에서 누가 당직과 공직을 하는 것이 그리도 중요한가?
추첨제로 당직과 공직후보를 뽑았다면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킨텍스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통진당의 와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엔엘, 피디가 뭣이 그리 다른가? 최근까지 하는 짓을 보면 민주당 2중대를 누가 누가 더 잘하는가 하는 모양새였다. 대선후보를 정의당의 심상정이면 어떻고, 진보당의 김재연이면 어떤가? 노동당, 녹색당 등 마찬가지다.
지역위원장이든 서울시당 위원장이든 당 대표든 공직후보든 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나와서 추첨제(사다리, 윷놀이 등)를 하면 된다. 다만, 본 추첨제를 하기 전에 교육(연수) 과정을 설치하고 이수한 사람에 한해 추첨자격을 부여하는 등 방법은 다양하게 마련할 수 있다.
분단국가에서 잘게 쪼개진 잔챙이 정당은 인민(국민)을 배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정당대통합에 나서지 않는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등 모습은 노선과 상처, 갈등의 골이 깊다고 한다. 이들에게 인민(국민)의 고통과 절망에 대해 절절한 느낌과 아픔이 있다면 결코 분열된 잔챙이로 생명을 연장하는 구차함은 가질 수 없다.
각 당의 대표와 의원들, 당내 주요 그룹은 더 이상 당원과 국민, 역사를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 인민(국민)이 태양처럼 크게 보인다면 당장에 진보진영대통합에 나서야 한다. 그간의 골과 상처가 결코 인민의 이익과 정의, 평등과 해방 위에 설 수 없다.
주인은 인민이다. 인민의 역사를 믿는다면 직접민주주의 추첨제다. 부르주아지 선거제는 결단코 인민제일 수도 민주제일 수도 없다. 진보진영(정당)의 대통합에 나서지 않는 세력은 결국 역사와 인민을 우습게 아는 추악한 정파이익의 소두목에 지나지 않는다.
대선을 앞두고 수구 국힘과 보수 민주당이 아닌 진보정당이라는 동네에서도 대선 출마 준비가 한창인가 보다.
출마의 근거는 대충 ‘진보정당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당원도 좀 늘고 지지율도 오르면 금상첨화다.
문제는 이런 바람이 전형적인 자기 착각,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대선이라고 해서 유세차량 몇 개 돌리고 홍보물 조금 날릴 수는 있다. 딱 거기까지다. 방송을 비롯한 일간지 등 언론에 보도는 기대할 수 없다. 고로 대중에게 홍보는 사실상 기대난망이다.
당원이 느는 것도 희망사항이다. 지지율도 오르지 않을 것은 너무 뻔하다.
진보정당이라는 동네에서 대선 후보를 내는 것은 한 마디로 당원들 등골 빼먹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세상을 바꾸자고 진보정당 하는 것 아닌가? 인민의 이익을 위해 진보정당 하는 것 아닌가? 피 같은 당원들 등골이나 빼는 짓을 왜 하는가?
지금과 같은 진보정당의 모양을 유지하려면 당을 해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운동단체로서 역할 하는 것이 훨씬 가성비가 높다. 꼭 당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정파(그룹)의 유지는 당이 아니어도 된다.
무슨 잔챙이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무엇을 위해 당을 유지하고 대선 출마의 깃발을 든단 말인가?
정파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진보정당이 아니라면 진보진영(정당)대통합에 나서야 한다. 지금 할 일에 최우선은 대통합을 위한 일에 나서는 것이다. 하나도 둘도 셋도 이를 위한 일이다.
서구나 여타 국가의 다양한 좌파 정당의 사례와 역사는 우리와 다르다. 오랜 시간 좌파진영의 투쟁과 축척을 통해 집권당, 제1야당 등 과정을 가진 국가와 우리는 사례와 비교가 어울리지 않는다.
진보대통합의 열쇠가 있다. 바로 추첨제다. 직접민주주의다. 당의 직접민주주의 실현이다. 선거제가 아닌 추첨제의 도입이다. 빌어먹을 자본제로서 선거제를 취하기에 온갖 더러운 이전투구와 갈등, 분열과 상처, 후유증으로 파산한다.
솔직히 함 말해보자.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중에서 누가 하면 어떤가? 무슨 차이가 얼마나 있는가? 당내 주인으로서 당원들의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는 토대에서 누가 당직과 공직을 하는 것이 그리도 중요한가?
추첨제로 당직과 공직후보를 뽑았다면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킨텍스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통진당의 와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엔엘, 피디가 뭣이 그리 다른가? 최근까지 하는 짓을 보면 민주당 2중대를 누가 누가 더 잘하는가 하는 모양새였다. 대선후보를 정의당의 심상정이면 어떻고, 진보당의 김재연이면 어떤가? 노동당, 녹색당 등 마찬가지다.
지역위원장이든 서울시당 위원장이든 당 대표든 공직후보든 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나와서 추첨제(사다리, 윷놀이 등)를 하면 된다. 다만, 본 추첨제를 하기 전에 교육(연수) 과정을 설치하고 이수한 사람에 한해 추첨자격을 부여하는 등 방법은 다양하게 마련할 수 있다.
분단국가에서 잘게 쪼개진 잔챙이 정당은 인민(국민)을 배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정당대통합에 나서지 않는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등 모습은 노선과 상처, 갈등의 골이 깊다고 한다. 이들에게 인민(국민)의 고통과 절망에 대해 절절한 느낌과 아픔이 있다면 결코 분열된 잔챙이로 생명을 연장하는 구차함은 가질 수 없다.
각 당의 대표와 의원들, 당내 주요 그룹은 더 이상 당원과 국민, 역사를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 인민(국민)이 태양처럼 크게 보인다면 당장에 진보진영대통합에 나서야 한다. 그간의 골과 상처가 결코 인민의 이익과 정의, 평등과 해방 위에 설 수 없다.
주인은 인민이다. 인민의 역사를 믿는다면 직접민주주의 추첨제다. 부르주아지 선거제는 결단코 인민제일 수도 민주제일 수도 없다. 진보진영(정당)의 대통합에 나서지 않는 세력은 결국 역사와 인민을 우습게 아는 추악한 정파이익의 소두목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