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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2일 장애인단체 회원 수십명이 휠체어를 타고 국회 앞 한나라당사 주변을 행진하며 장애인 예산 확대를 촉구했다. 전투경찰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들의 행진을 따르고 있다. |
ⓒ 최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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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삽질 중단하고 장애인 예산 확보하라!"
2일 오후 국회 앞 한나라당사를 50여 대의 휠체어가 에둘러 쌌다. 휠체어에 의지한 그들은 부자연스러운 몸짓과 입을 통해 처절한 외침을 흘리고 있었다. 추위도, 방패를 든 수백 명의 전투경찰도 그들의 구호와 행진을 가로막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선전하던 장애연금제도는 기존 장애수당제도를 이름만 바꾸는 어이없는 '사기극'으로 판명 났다. 중증장애인의 생존과 자립생활에 직결된 활동보조 예산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신규신청이 금지됐다. 또한 정부가 밝힌 저상버스 도입 내년 예산은 법정기준과 정부 스스로 세운 5개년 계획의 5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한나라당을 둘러싼 장애인들은 이 모든 것이 "4대강 삽질 사업에 들이붓는 천문학적인 예산 때문"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19개 전국조직과 산하 지역조직들로 구성된 '2010년 장애인 예산 확보 공동행동' 등 전국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장애인 민생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이유다. 전국 장애인단체 회원들은 이날 각 지역에서 전국 동시다발 한나라당사 앞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삽질 예산 폐기하고 장애인 생존권 예산 보장하라"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최소한의 국민적 동의도 얻지 못한 4대강 삽질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며 "삽질 예산 이외의 모든 부문의 예산들이 반 토막이 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마저도 잔인하게 난도질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장애연금제도를 도입해 정부가 책임지고 장애인을 보살피겠노라고 공언했지만, 지금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장애연금제도는 기존의 장애수당을 이름만 맞바꿔치기 하는 사기극임이 판명 났다"며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분노하고, 전 장애계가 반대하는 제도를 정부와 한나라당은 왜 도입하려 하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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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2일 장애인 단체 회원들 수십명이 국회 앞 한나라당사 주변을 행진하며 장애인 예산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
ⓒ 최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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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또 지난 2007년 도입된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제도와 관련 "지난 10월 말 복지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활동보조 신규신청을 금지하는 어이없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비판한 뒤, "한나라당은 4대강 삽질에 예산을 몰아주기 위해 저상버스 예산마저 대폭 삭감시키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우리는 더 이상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기만적 예산놀음을 지켜볼 여유가 없다"며 "장애인의 눈물을 묻고 장애인의 피를 흐르게 하는 한나라당의 4대강 삽질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당장 4대강 삽질을 중단하고 장애인 민생 예산을 확대하라"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예산 절감을 위한 도구가 돼 버린 장애인연금
지난 7월 말 보건복지가족부가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2010년도 보건복지가족부 소관 예산 및 기금운영계획(안)'에 따르면, 복지부는 기초장애인연금으로 3239억 원을 편성했다. 이는 물론 장애계가 요구하고 있는 예산안에 턱없이 부족한 규모였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이를 다시 반 토막 내서 내년도 예산안을 최종 편성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기존의 장애수당보다 1000원 증액된 예산안을 내놓았다. 문제는 정부의 장애연금 예산은 사실상 다른 장애관련 예산과 복지예산을 줄여 마련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 제도의 도입으로 정부가 수백억 원의 예산 절감 효과를 보게 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 7월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연금제도의 도입을 위해 약 1519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하지만 그동안 중증장애인에게 지원되던 장애인 차량 LPG 지원금이 내년부터 전면 폐지된다. 이로 인해 LPG 지원금 예산 1031억 원이 삭감된다. 그동안 중증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했던 비용을 장애인 본인이 모두 부담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장애연금제도의 시행으로 중증장애인의 장애수당이 내년 7월부터 폐지된다. 이에 따라 중증장애인 장애수당 예산 1078억 원도 절감된 것이다. 이대로 예산이 확정될 경우 정부는 새로운 기초장애연금제 도입으로 590억의 예산 절감 효과를 보게 된다.
특히 중증장애인들의 소득 감소가 불가피하다. 장애인연금제도 시행으로 지자체의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지자체가 별도로 마련해 지급하고 있는 장애수당을 없앨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울산시의 경우 중증장애인은 월 18만 원(장애수당 13만 원+지자체 별도 장애수당 5만 원)의 장애수당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연금제도가 시행되면 울산시의 기초생활수급 중증장애인은 월 15만 1000원(기본급여 9만 1000원+부가급여 6만 원)을 수령하게 돼, 오히려 3만여 원의 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마땅히 있어야 할 제도 없어 비참한 삶 강요당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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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국회 앞에서 열린 복지예산 확충 결의대회에 참석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복지예산이 4대강에 빠져죽고, 부자감세에 떠밀렸다"고 안타까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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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활동보조서비스'다. 박경석(50)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마땅히 있었어야 할 제도가 없음으로 인해 그동안 중증장애인들은 학교를 못 가고, 외출을 못 하고, 가족의 짐이 되고, 시설에 보내지고,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비참한 삶을 강요당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활동보조 예산은 물론 '탈시설 초기정착금' 예산마저 전액 삭감 위기에 처했다. 자립생활과 탈시설은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활동보조서비스의 경우, 신청자가 이미 정부의 예정인원 2만5000명을 훌쩍 뛰어넘어 지난 9월 2만7000명에 달했다. 매월 1000여 명의 추가 신청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자 정부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지난 10월 말로 활동보조서비스 신규신청을 금지시켰다.
특히 기획재정부의 심의안은 2010년의 활동보조 대상인원을 3만 명으로 책정했다. 이는 서비스 신청인원 자연증가분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또한 서비스 제공시간을 동결(평균 72시간)하고, 단가도 삭감(7500원→7300원)시켰다. 결국 현재 월 2만(차상위)~4만 원(차상위 이상)인 장애인들의 자부담이 증가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장애인단체측은 2010년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을 최소한 3만5000명을 기준으로 할 것과 서비스 제공 시간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올해처럼 신규신청을 금지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호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을 위한 초기정착금 지원도 장애인계에서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보건복지가족부가 제출했던 예산 5억 원(500만 원×100명)마저 기획재정부는 전액 삭감하겠다는 입장이다.
박경석 상임대표는 "이 예산을 없애는 것은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을 향한 의지를 꺾는 야만적인 처사이며, 국회 심의 과정에서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세운 계획조차 후퇴될 위기에 처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및 시행령, 그리고 지난 2007년 4월 수립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에 따르면, 2011년까지 전체버스의 31.5%를 저상버스로 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3713대의 저상버스를 도입해야 하고, 국고와 지자체의 예산이 50:50의 매칭펀드로 투입되기 때문에(서울시는 국비 40% 지원), 중앙정부 지원예산은 2010년과 2011에 각각 1700여억 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저상버스 예산은 정부 스스로가 법정기준을 준수하기 위한 1700여억 원의 1/6수준인 325억만이 배정됐다. 이는 국토해양부가 각 지자체별로 파악한 저상버스 도입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예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즉 지자체에서는 일정한 예산을 마련했지만, 중앙정부의 매칭펀드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저상버스 도입 확대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 셈이다.
장애인단체 측은 "국회에서의 심의 과정에서 법정기준을 준수할 수 있는 예산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며, 차선책으로 최소한 지자체의 도입 수요에 해당하는 예산 720억 원은 확보가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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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전국빈민연합 등 소속 회원들이 2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복지예산 확충을 위한 '국회 재개발 선포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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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사회연대 등 '국회 재개발 선포' 문화제 개최
한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전국빈민연합 등은 이날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2010 복지예산 확충을 위한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이날 결의대회에서 ▲ 기초생활보장 예산 확대 ▲ 장애인 복지예산 확대 ▲ 의료급여 예산 삭감 철회 및 빈곤층 건강권 보장 ▲ 살인개발 중단 및 용산참사 해결 ▲ 생계형 가계부채 탕감 ▲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 반대 ▲ 도시빈민 생존권 보장 ▲ 4대강 사업 폐기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또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복지예산 확충을 위한 '국회 재개발 선포 문화제'를 개최하고 3일 오전까지 1박2일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전국이 온통 개발천국인데 정작 재개발되어야 하는 곳은 국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3일 오전 국회 앞에서 '인간 띠잇기' 등의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성북장애인재립생활센터에서 온 김정(31)씨는 "매년 늘어나도 부족한 복지예산이 자연 증가분조차 담보하지 못한 채 오히려 줄어들고, 부자들의 세금은 줄여 배를 불리게 하고 있다"며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가 벌여놓은 사업이 너무 많으니까 복지예산을 줄이는 것 아니냐"고 안타까워했다. 행사에 참석한 또 다른 장애인은 "세계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두고 한국 장애인은 생존권을 걱정해야 한다는 게 서글프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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