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전화든 문자든 그 무엇이 되었든 권력의 주구 노릇을 서슴치 않는 사회에서 늘 조심하고 주의했던 건 항상이었다.
미행이나 도청에 대한 경각심도 여전했다 그건 우리네 삶의 불안한 각성이었다.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여야간 평화적 정권교체, 참여정부라는 10년의 세월도 비껴서지 않았다.
IT공화국답게 발빠른 카톡, 밴드는 폭발적인 편리함과 인기를 쌓고 누렸다.
한나라새누리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법과 원칙은 주둥이에만 붙어 나불거렸다.
닭이 쥐새끼만큼만 해도 현상유지는 하는 것일텐데, 아마 닭은 공포정치를 하게 될 것이다.
눈으로 보고 배운 것이 그런 것밖에 없다.
마이동풍, 세상은 공주나 왕비에게 발아래 납작 조아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옷 갈아 입고, 거짓 조문쇼, 거짓 눈물로 민중을 기만하고 현상을 왜곡하는 굴절의 대명사다.
대놓고 자갈을 물리겠다고 덤빈다. 떡검, 견찰의 반응은 즉각적이다.
카톡, 밴드 관계자는 공안기관관계회의에서 참석해 알아서 갖다 바쳤다.
자체 검열까지 한 카톡은 이민가라, 왜 힘없는 우리에게 난리냐고 엉긴다.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른다. 개인의 권리와 신변을 안전하게 지켜야 하는 지 개념이 없다.
그들에게는 그냥 돈만 벌면 되는 sns이고 기업일 뿐이다.
텔레그램이 떴다.
러시아 푸틴에 맞서서 망명까지 했으며, 서버는 개인암호화되어 감히 권력이 들이밀수 없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카톡, 밴드, 공안기관, 새누리그네를 향해 소소한 저항을 하는 것이다.
카톡과 밴드를 탈퇴해 버리고 텔레그램으로 우리를 주고 받는 것이다.
민중의 이익과 사생활을 보호하거나 지켜야 한다는 개념은 없으면서 권력에는 알아서 기는 기업은 망해야 한다.
기업이 나를 지켜 주지 못하고, 국가가 나를 지켜 주지 못한다면 그런 기업과 국가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손바닥만한 자유도 민주도 인권도 평화도 그냥 거저 주어지는 건 없다.
숙명과 게으름은 자유와 민주의 사치다.
이 조그만 저항조차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냥 쥐닥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텔레그램 그곳에 굴종과 억압을 거부한 자유와 민주의 몸짓, 저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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