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독서

아리랑2-님웨일즈, 김산

강현만 2011. 4. 12. 17:25

군관학교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으로 김산은 만주 압록강변에 위치한 신흥학교에 들어 갔다. 만18세 이상이면 갈 수 있는 학교였지만 15세였던 김산은 학교측의 배려로 시험을 보게 되고, 3개월 코스 입학이다. 4시 기상해서 저녁 9시까지 이어지는 게릴라전술에 필요한 각종교육이다.

 

3개월 교육과정을 마친 김산은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할 것과 혁명운동에 복무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상하이로 향하게 된다. 상하이에서는 임시정부 결성이 한창이었으며, 1920년 3월 1일 의정원 첫회의가 열리고 헌법이 채택되었다.

 

김산이 만난 이동휘 - 1907년부터 최초의 공산당 창립이 있기까지 민족주의적 혁명운동가, 1918년 '이르쿠츠크 공산당' 조직, 초대 임정 총리를 맡았으나 1922년 아메리카민족주의자들에게 패하면서 임시정부와 관계를 단절함. 모스크바에 가서 레닌을 만나는 등 조선독립과 공산주의운동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함.

김산이 만난 안창호와 이광수 - 1920년 김산은 무정부주의적 경향을 가진 민족주의자였고, 이광수는 김산이 일하던 <독립신문>의 편집장이었고, 안창호는 임시정부 노동총판으로서 흥사단 창설지도자였다. 안창호, 이광수 자주만나고 토론도 하였으며 흥사단에 입단한다. 김산은 안창호에게서 흑인영가 등 많은 노래와 이야기를 배운다. 안창호는 부르주아 민주적 대중운동을 대변하고, 이광수는 상층 부르주아 지식층의 자유주의적 문화운동을 대변한다. 안창호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였지만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역할을 인정한다. 이광수는 프롤레타리아의 세력 증대를 반대한다.

 

김산은 상하이에서 수많은 테러리스트 지도자들을 만나고 의열단 활동과 무정부주의자로서 '흑색청년동맹' 창설자 신채호를 기록한다. 1932년 홍커우공원에서 윤봉길의사의 폭탄투척사건도 언급되고 있다. 의열단은 절도있는 생활과 체력으로 무장한 소수정예요원이었다. 이번이 죽기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사진찍기도 좋아했고, 아가씨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김산이 만난 걸출한 테러리스트 김약산과 오성륜 - 김약산(김원봉, 해방 후에 이북에서 높은 직위에 오름)은 고전적인 테러리스트로서 냉정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개인주의적 지도자였으며, 빼어난 미모와 톨스토이 광이었다. 오성륜은 드러나지 않는 사람으로서 비밀형의 지도자였다. 오성륜은 광동꼬뮌과 하이루펑소비에트에서 김산과 함께 한다.  

 

김산의 이야기속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나 이 시기는 민족주의 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조선민족의 원수 일제를 상대로한 테러리스트와 무정부주의에 대한 부분까지 너무도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들이다.

김산이 겪었던 이야기이기에 우리가 역사로 알고 있는 부분과 경중이나 실제에서 약간의 차이가 날수도 있다. 엄혹하고 혹독한 시기에 우리 선배들이 최선을 다해서 논쟁하고 투쟁했다. 갈등, 반목, 대립도 있다. 인간적인 면모의 기록은 색다른 느낌으로 좋다.

 

나는 1984년 겨울이 되고, 1985년이 되면서 실천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선배들의 판단이 전제되었을 것이다.

87년 6월항쟁과 7,8,9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우리네 투쟁은 거의 모두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투쟁의 양상을 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6월 항쟁 이전에는 모든 투쟁이 대단히 비밀스럽게 진행되었다.

 

가령, 피세일(홍보물)을 한 번 하기 위해서도 현장을 두세번의 답사를 통해서 모든 지리적 위치를 파악한다. 유사시에 도망치고 빠져나갈 정보를 모두 준비했다. 물론 알리바이도 세밀하게 맞춘다. 주택가 골목 양쪽으로 보초가 서고 두명이서 비밀스럽게 등사한 유인물을 순식간에 양쪽의 집집마다 집어 넣고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무런 사고없이 만나면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기쁨에 겨워 술로 구호로 이야기로 흥분을 나누었다.

가투(가두투쟁)는 왜 그리도 빨리 적들이 나타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토록 비밀스럽게 준비한 투쟁이지만 보통 5-10분을 넘기기가 어렵다. 가투를 하기로 한 현장에 나가면 투쟁에 참가하러 온 학생들이 눈에 보인다. 모두가 뛰기 편한 복장이다. '동'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플랭카드가 펼쳐지고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막고서 행진하게 된다. 이때 '동'은 통상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맨앞 선두에서 투쟁대오를 이끌었다. 금새 나타난 경찰들과 돌, 화염병으로 대치투쟁하다가 산회해서 도망치게 되어 있다. 물론 사전에 퇴로 등에 대해 숙지하고 참여를 했다.

신문로, 상계동 철거 반대투쟁 등에 참여한 기억이 난다. 85년 가을 IMF·IBRD 반대투쟁이 청량리에서 열렸다. 나는 이 투쟁에서 맨 앞에 자리를 잡고 돌 등을 던지며 투쟁했는데 나중에 보니 대오가 이미 모두 보이질 않았다. 꼼짝없이 도망치다가 잡혀서 청량리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즉결심판에서 구류 10일을 사는 동안 학교에서 중간고사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가버렸다. 구류를 살고 나오니 교회나 학교 양쪽에서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고 온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진한 술로 대접을 반겨해 주었다.

 

나는 2학년이 되면서 교회와 학교 양쪽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지금도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교회쪽에서 후배를 지도하게 된 것이다. 당시 교회쪽 동기는 잘나간다는 서울대 등 여러 훌륭한 동기들이 있었는데도 나에게 후배 지도를 맡긴 부분이다. 1학년 겨울 방학 때 영어로 된 세미나를 할 때 나는 상당히 쪽팔렸다. 내 부족한 영어 실력이 선배, 동기들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선배들이 나로 하여금 후배를 지도하게 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운동 열정에 대해 높이 산 것이 아닌가 생각할 따름이다.

2학년 때에는 한 주에 통상 7-8번의 세미나를 했던 것 같다. 자구발(자본주의 구조와 발전)같은 책은 나중에는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가는 만큼 다양하고 깊이 있는 사회과학서적들로 사상의식을 높여갔다. 경제, 역사, 철학 등 참 많은 책들을 읽었던 것 같다. 동기, 선후배들과 어울리는 모든 공간은 나에게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건대앞과 한대앞은 술, 노래, 논쟁, 눈물, 웃음 등 즐거운 추억들로 넘친다.<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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