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도 어김없이 부모님과 함께 전남영광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를 예쁘게 단장하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조부모님 산소는 비석이나 평상 하나 없이 산소만 덩그러니 있습니다. 그 동안 원래 계시던 곳(고창)에서 이장해 지금 영광에 있습니다.
몇 해 전에 돌아가신 막내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묘지를 어떻게 든 정성스럽고 조금은 번듯하게 가꾸고자 애를 썼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갑작스런 췌장암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매 해 찾아 뵙고 산소 벌초라도 하게 된 건 그나마 우리들(손주)이 크면서 조금은 경제적으로 여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10여년 전만해도 먹고 살기 바쁘고 한 번 내려가면 수십만원의 돈이 들기에 벌초를 하러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맘은 있으되 현실이 따라주지 못하니 부모님의 마음이 어떠했으랴 생각하면 참 아프고 저릿해집니다.
나로서는 장남이라는 책무가 더해져 있으니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부모님과 함께 집안 일에 최대한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영광에 가면 고모가 계십니다. 고모도 이제는 칠순을 넘겼습니다. 고모가 있어서 시골에 내려가는 기쁨이 큽니다. 고모도 이제 많이 기운이 떨어졌습니다.
고모가 있어서 시골에 갔다올때면 짐이 넘쳐 납니다. 여전히 시골 인심은 이것저것 많이 싸주어야 합니다.
내년 3월에 윤달이 있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당신들 죽고나면 누가 묘지를 관리할 수 있겠냐시며 내년에 화장해서 뿌리자고 하십니다.
자식되고 후손된 처지에 그래도 어떻게라도 묘지를 꾸미길 원했지만 이 번에 부모님 말씀에는 다른 의견을 낼 기운을 갖지 못했습니다.
부모님 뜻에 동의하고 유골을 뿌릴 때는 고향(고창) 모양성(고창읍성)에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더했습니다.
작은 집들에는 이런 뜻을 연락해서 전하기로 했습니다.
조부모님 화장 이야기와 더불어서 부모님께서는 당신들 죽고나서 이야기도 했습니다. 죽고나면 시신을 기증해달라십니다.
죽어서나마 조금이라도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겁니다. 나도 이미 오래전에 전철역에서 시신기증서에 서약해서 낸 적이 있는데 그게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부모님과 내 뜻이 하나로 동의가 되었습니다. 시신을 기증하는 방법이나 절차를 알아보라는데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확인한 결과 절차는 간단했습니다.
이제 부모님과 나는 합의한 뜻에 따라 죽은 이후에 시신기증을 하면 됩니다. 부모님께서 그런 결정과 뜻을 세우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도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2년 6개월 이후에는 대학에서 화장된 유골을 돌려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나는 고창 모양성에서 조부모님과 만날 수 있는 의식을 진행하면 됩니다. 내 자식들도 나와 똑같이 하면 됩니다.
내년 윤달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조부모님 의식에 경건한 마음으로 함께 하고자 합니다. 아이들이 무언가 느끼는 건 그들 몫입니다.
살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죽어서도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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