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경희(1918) - 나혜석
강현만 추천 0 조회 148 20.05.05 16:25 댓글 0
소설 경희(1918) - 나혜석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사람이에요. 당신 댁처럼 영감 아들 간에 첩이 넷이나 있는 것도 배우지 못한 까닭이고, 그것으로 속을 썩이는 당신도 알지 못한 죄이에요. 그러니까 여편네가 시집가서 시앗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가르쳐야하고 여편네 두고 첩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르쳐야만 합니다.>
<경희의 앞에는 지금 두 길이 있다. 그 길은 희미하지도 않고 또렷한 두 길이다. 한 길은 쌀이 곳간에 쌓이고 돈이 많고 귀염도 받고 사랑도 받고 밟기도 쉬운 고운 흙길이요, 가기도 쉽고 찾기도 어렵지 않은 탄탄대로이다. 그러나 한 길에는 제 팔이 저리도록 보리방아를 찧어야 겨우 얻어먹게 되고 종일 땀을 흘리고 남의 일을 해주어야 겨우 몇 푼돈이라도 얻어 보게 된다. 이르는 곳마다 천대뿐이오. 사랑의 맛은 꿈에도 맛보지 못할 터이다.>
<먹고만 살다 죽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금수이지요. 보리밥이라도 제 노력으로 제 밥을 제가 먹는 것이 사람인 줄 압니다. 조상이 벌어놓은 밥 그것을 그대로 받은 남편의 그 밥을 또 얻어먹고 있는 것은 우리 집 개나 마찬가지지요.>
<금수와 다른 사람은 제 힘으로 찾고 제 실력으로 얻는다.>
<경희도 사람이다. 그 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 산정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것도 사람이 할 것이다.>
위 글은 소설 경희에 나오는 구절이다. 경희는 1918년 조선여자친목회가 펴낸 [여자계] 2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경희는 사실상 나혜석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일본에 유학을 가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이며 소설가, 시인, 판화가, 수필가, 독립운동가, 페미니스트가 된 나혜석이지만 그 시대에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자는 그냥 남자의 부속물일 뿐이었다. 1896년에 태어난 나혜석은 1914년 소설 이상적부인에서 현모양처는 이상을 정할 것도, 반드시 가져야 할 바도 아니다.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부덕을 장려한 것이다. 라고 설파하였다.
경희는 그 시대에 가족, 여자, 결혼 등 그 시대를 사는 신여성의 고뇌와 갈등, 상처를 담담히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 하늘에 기도를 드리는 장면은 지난 날 내 모습을 떠오르게 하였다.
하느님의 자식으로 살겠다고 신학대에 들어갔던 나는 상아탑이라는 대학의 지성을 학습하고 이해하면 할수록 시대의 모순을 타파(타도)하는 운동가로 되었다. 그런 중에도 술집에서 술에 취해 술 취한 화장실에서 얼마나 많이도 술 취한 하나님을 찾고 예수를 부르며 싸우고 시름했던가!
소설에서 경희가 두 팔을 번쩍 들고 두 다리로 껑충 뛰었다. 금수가 아닌 사람으로, 여자이기 전에 사람으로 살 것을 결정하는 황홀한 정신의 결정이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성 혐오가 횡횡하고, 먹고 죽으면 그만이라는, 배 뚜드리다가 죽는 부자가 모든 것인 양 보이는 세상이다. 그런 삶과 세상은 금수라는 경희의 성찰과 결단은 100년이 지난 우리에게 여전히 묻고 있다. 사람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 거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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