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이상호 청소년 잡지 '햇살놀이터'에...

강현만 2010. 3. 18. 14:35
2010/03/16 14:28 일상으로의 초대



청소년 잡지 '햇살놀이터'에 실릴 제 기고문입니다~|



서른이 넘어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지인(知人)이 있습니다. 학생운동은커녕 거리 시위 근처에도 간 적이 없는 그였는데요. 좋은 직장에 다니며 승승장구하던 그였는데요. 의외의 변신에는 분명 사연이 있을 것 같아 물었습니다. ‘왜 정치를 하려는 건가요?’ 햇살편집부

 

안녕하세요? 저는 다가올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도봉구의원직에 출마하는 30대 청치인 이상호입니다. ‘왜 그 지저분하다는 정치판에 몸을 담는가?’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옛날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지금은 강북구가 된 미아동 산동네에서 살던 열두살 때 아버지가 심장판막증이라고, 피가 거꾸로 솟는 병에 걸리셨습니다.

 

당시 돈으로 수술비가 천만원이었고, 그 돈이 없어서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죠. 그 뒤로 어머니가 음식점에 나가서 설거지도 하고, 옥수수, 감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행상으로 4남매 키우셨습니다. 노점상도 못 되는, 말 그대로 도시빈민의 삶이었습니다. 저는 출세를 위해 공부에만 열중했고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 등에 친구들이 참가할 때도 ‘비싼 등록금 내고 와서 공부나 열심히 할 일이지…’하며 피해 다니곤 했습니다.

 

그렇게 지독하게 산 결과 졸업 후에는 손꼽히는 외국회사에 입사했고 어머니는 강남으로 자가용 끌고 출근하는 아들을 배웅하는 일과 낮에 세탁소에 가서 양복을 맡기며 ‘우리 아들이 어느 학교 나와서, 어느 회사 다니고…’라며 자랑하는 것을 큰 낙으로 삼게 되셨죠. 어떤 달은 보너스를 합쳐서 천만원을 월급으로 받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돈은 지난 날, 아버지 수술비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평생 홀로 사신 큰아버지를 아버지처럼 의지하며 살았는데, 어느날 그런 큰아버지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거의 1년 반 동안 반신마비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시다 결국은 임종하셨는데 한 달에 병원비가 간병인비를 포함해서 300만원씩 들었습니다. 그 때는 형제들도 직장인이어서 어렸을 때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았지만 월급은 모두 병원비로 소진되었습니다.

 

주중에는 지방에 파견 근무, 주말에는 큰아버님 대, 소변 받으러 올라오는 일상으로 생활도 피폐해졌죠. 제 개인의 허무함을 넘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요새 한 달에 80만원 버는 비정규직이 부지기수라고 하던데, 그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닥치면 어떻게 할까?

 

돈이 없으면 사람이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 문제는 혼자 돈을 많이 번다거나, 스스로 의료인이 되거나, 아는 사람 중에 의료인이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사회가 같이 풀어가야 할 문제였던 거죠. 때마침 ‘무상의료’를 주장하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있어 회사를 그만두고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고 지난 해 ‘민생상담소’라는 것을 열어서 채무에 시달리는 사람들, 건강보험료 밀려서 병원 못 가는 분, 자잘한 법적인 문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당장 발등의 불이라도 끌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 때부터 제 삶에 목표는 ‘돈 없다고 죽게 되지는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머니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이제는 ‘큰 회사 다니는 아들’ 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는 아들’로 자랑해 주셨으면 하고 바랄뿐입니다.

 

저도 서른이 넘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결코 미덕이 아닙니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을수록 정치는 진흙탕이 되어버리니까요. 정치를 아름답게 할수록 청소년들의 미래뿐 아니라 현재도 밝아집니다. 정치인을 꿈꾸는 친구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이상호 adonis235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