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독서

시 - 이창동, 영화

강현만 2014. 10. 5. 03:49

시 - 이창동, 영화

 

사는 것이 아름답거나 기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존엄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영화 ‘시’를 만난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물이 흐른다. 무심하게 수천년의 세월을 흘렀을 그 물 위에 어린 소녀의 둥둥 죽어서 흐르고 있다. 강변에 뛰노는 아이들이 본다.

그 소녀의 죽음에 윤정희가 있다. 그리고 손주가 있다. 할머니 윤정희는 남의 집 청소도 하고, 늙은이 목욕도 시켜준다. 그렇게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 소녀는 같는 학년의 남학생들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자살하였다. 윤정희 손주도 성폭력을 한 여섯 명의 남학생 중의 하나다.

5백 만원씩 3천 만원을 만들어서 어떻게든 합의를 할려고 하는 가해자 부모들의 모습과 윤정희가 시를 쓰고자 하는 과정이 겹친다.

중풍맞은 늙은 김희라가 비아그라를 먹고서 마지막 소원을 빈다. 소녀의 어머니를 만나고, 소녀가 자살한 다리와 강가를 배회하던 윤정희는 김희라를 찾아서 비아그라를 먹이고 마지막 소원을 들어준다. 마치 박성원 '얼룩'에서 버스에 타고 있던 여인이 낯선 남자의 거시기를 무심히 흔들어 주듯이.

가난하지만 자신을 꾸미고 사랑할 줄 알았던 윤정희는 인생의 단 한 편이 되는 시를 남기고 소녀와 같이 한다. 마치, 너희는 세월호 죽음에 어떻게 하고 있는데 하고 묻는 것만 같다.

 

쥐닥세상은 시를 볼 수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

 

[영화 대사]

“선생님, 시를 너무너무 쓰고 싶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어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잘 봐야 돼요. 우리가 살아가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보는 거에요”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에요.”

 

“분명한 거는 내 주변에 있다는 거야. 멀리 있지 않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 거기서 (시상을) 얻는 거에요. 내가 얘기했죠? 설거지통 속에도 시가 있다고…….”

 

“써봐야 진짜 알게 돼요.”

 

[이창동 감독 인터뷰]

 

”영화, 시, 소설 모두 세상을 바라보고 고민하며 느끼고 내 속에 있는 뭔가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제목을 하필 ‘시’라고 했던 건 사람들에게 가장 질문하기 좋은 화두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는 없어도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잊어버리기 쉬운 것, 사는 데 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꼭 필요한 어떤 것. 보이지는 않지만 삶의 의미나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