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독서

이방인 - 알베르 까뮈, 책세상

강현만 2014. 10. 7. 15:22

이방인 - 알베르 까뮈, 책세상

 

신의 편에 서서, "모든 것엔 고귀한 신성이 있고 아직 인간의 심판이 뫼르쏘에게서 벗겨놓지 못한 죄의 짐을 바로 신이 덜어줄 것"임을 선언하는 그 신부를 향해, 뫼르쏘는 대답대신 멱살을 틀어쥐고 생의 모든 분노를 그에게 쏟아낸다.


신부가 떠나버린 그 감방에 홀로 누워, 그가 사회로부터 이방인임을 선고받던 최초의 원인, 또한 일상적 수면으로부터 깨어남의 열쇠였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가 생의 종말에서 왜 약혼자를 가졌었는지, 왜 생을 다시 시작하는 놀이를 하였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 역시, 생명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주위에서도 저녁은 우울한 휴식시간 같았었다. 그처럼 죽음 가까이에서 어머니는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를 했었던 게 틀림없다. 누구도 그 아무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눈물을 흘릴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죽음 가까이에서 해방감을 느꼈고 다시 살아볼 마음이 생겼다. 나 또한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쾌감이다. 죽음을 통한 살아 생동할 수 있음에 대한 고백이다. 어쩌면 영원히 이해하거나 불가사의한 삶이 죽음을 통해 비춰지나보다. 나이 먹는 것이 좋다. 그만큼 이생의 끝이 보인다.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 살아 짊어진 짐이 가벼워진다. 삶의 진지함과 치열성을 얼마나 해내었는가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짊어진 짐이 가벼워진다는데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나이 먹는 것에 행복감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뫼르소의 신부 멱살을 틀어쥐고 분노를 쏟아내는 것에 깊은 공감을 갖는다. 너무도 당연히 없는 신을, 저 무지한 원시인들이 만들어 놓은 신을,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으로 인간의 뇌 구석구석까지 밝혀 내고 있는 문명사회에서조차 끊임없이 믿을 것을 강요하는 세상이 얼마나 코미디인가? 그 빌어먹을 기생충들의 어거지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죽음이 가까워 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사형집행을 구경하기 바라는 뫼르소처럼, 죽음으로 웃기는 신같은 건 없는 것이라는 걸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배부른 기생충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재생산하는 온갖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유일무이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종교(신)는 죽음으로 끝이다. 물론 살아 밥버러지 해야 할 것들은 또 그렇게 끊임없이 주의주장, 이념을 확산할테지만 말이다. 그 속에는 돈도, 권력도, 천국도 오직 내 것이라는 밥버러지의 배부른 소음만 흩어지고 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모든 나의 고통을 순화시켜 주고, 희망을 없애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이 징후들과 별들이 가득 찬 이 밤 앞에서 처음으로 이 세계의 자애로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계가 이렇게도 나와 비슷하고 사실상 형제 같음을 느끼게 되니, 나는 행복했었고 또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생의 극치를 위하여 내가 덜 고독하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내 사형이 집행되는 날 구경꾼들이 많이 와서 증오에 찬 고함소리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별들이 가득 찬 캄캄한 밤에 이 세계가 이토록 나와 비슷하고 형제같다. 마지막 생의 극치를 느끼며 행복하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한 것들은 세상의 정의와 평화, 사랑과 평등을 짓밟는다. 프랑스처럼 친일매국노들을 단죄하지 못한 역사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친일매국노들에 대한 단죄는 시효가 없다. 지식인, 교수, 기자, 작가 등 정신문화적 영역에 매국노는 한층 더 확실하게 처벌했다고 하지 않던가? 언제든 확실하게 처벌해야 한다.

친일매국노들에 의해 지배당하는 한국사는 왜곡된 이방인으로 살게 한다. 부정과 부패, 억압과 독재에 저항하는 인생은 이방인이다. 독립군의 후손들이 철저히 이방인으로 틈에 끼어 사는지 죽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자유와 민주를 훼손하고 억압하는 자들에게 맞서 저항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여전히 위험하고 철없는 짓으로 인식된 관성들이 존재한다. 괜히 가까이 했다가는 불똥이 튈까봐 지레 겁먹고 피할려고 한다. 그러면서 내뱉는 소리는 아직도, 세련되게, 성숙되지 못했다고 하는 그럴듯한 조각들이다. 배부른 기생충 밥버러지들에게서 떨어지는 고물이나마 어떻게든 핥아 보겠다는 닳고 닳은 허세다.

 

칼858기 폭파는 노태우대통령 만들기 작품이다. 천안함은 두 동강은 이북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4대강, 자원외교, 잠실롯데 허가는 미친 짓이다. 19대 대통령선거는 부정선거다. 세월호는 정부권력의 책임이다. 라고 주장하는 너무도 보편타당한 목소리가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거나 정부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읽히는 사회는 이방인일 수 밖에 없다.

노조활동조차 여전히 빨갱이 짓으로 내몰리는 사회에서 정상인으로 산다는 건 뇌의 회로가 별나야 가능하다. 이방인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