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독서

저녁-송기원(실천문학사)

강현만 2025. 5. 22. 14:58

바람이 나에게 전하는 말

 

 

 

크게크게 입을 벌려

 

64년을

 

배 터지도록 마시고도 모자라

 

두 팔을 허우적이며

 

아직도

 

, 터진 풍선을 움켜잡는군

 

 

송기원 시집 저녁에 대한 책거리다. 수유 알라딘에서 손에 들렸다. 손에 잡히는 대로 몇 편씩 읽다 보니 가방에 꽤 오래 있었다. 송기원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민주화운동에서 체험되었으리라. 인문학 모임(독서) <금빛수다>에서 언젠가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시집에 대해 수다를 한 적이 있었다.

 

1980년 백남기(우리가 아는 농민)의 요청으로 전두환 화형식 시위에 참여했다. 송기원은 네 번의 옥살이를 하였다. 둘째 딸이 백혈병에 걸리자 강단에서 내려와 딸을 보살폈다. 그러나 딸은 세상을 떠났다. 아프고 서럽다. 시인의 일상이 어떠했을지 심히 가늠하기 어렵다. 2024731일 이승을 등졌다.

 

 

 

 

 

살아생전, 안타까웠던 것은

내가 단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다는 것.

 

세상의 길이란 길은 남김없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밖에 없을 때

 

살아생전,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길이라는 걸 몰랐다는 것.

 

 

두엄

 

 

 

썩을수록 따뜻한 두엄에서, 내가

잘 썩고 있다고 여기자.

 

무서리가 내린 초겨울 아침에, 두엄에서 네가

모락모락 하얀 김으로 피어오른다고 여기자.

 

온밤을 홀로 추위에 떨며 지샌 네가

두엄에서 무심코 걸음을 멈춘다고 여기자.

 

 

 

송기원(1947~2024, 전남 보성)

 

시집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1982), 마음 속 붉은 꽃잎(1990),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2006)

소설집 월행(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1994), 여자에 관한 명상(1996), <>(2021)

산문집 송기원의 뒷골목 맛세상(2006) 안으로의 여행(1999), 또 하나의 나(2000)와 소설 사람의 향기(2003) .

 

 

새삼 선생이 살아간 삶의 여정에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아픔이 스며든다. 선생의 시처럼 누구나 한때는 자랑스러운 자식으로, 부모로, 벗으로 그렇게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랴. 이제 단 하루라도 세상에 누가 안 되는 것이 됩니다. 모기며 쇠파리 한 마리에도 부끄러워 눈길을 피하게 된다.

'책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야문학 출판기념회  (0) 2024.08.30
그대 등 뒤의 슬픔에게 - 용이림  (0) 2024.08.29
금빛수다 - 노인과 바다(김쾌대 작가)  (2) 2024.01.30
죽을 권리  (0) 2023.12.13
금빛수다-헬조선의 민낯  (0) 202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