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나에게 전하는 말
크게크게 입을 벌려
64년을
배 터지도록 마시고도 모자라
두 팔을 허우적이며
아직도
뻥, 터진 풍선을 움켜잡는군
송기원 시집 『저녁』에 대한 책거리다. 수유 알라딘에서 손에 들렸다. 손에 잡히는 대로 몇 편씩 읽다 보니 가방에 꽤 오래 있었다. 송기원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민주화운동에서 체험되었으리라. 인문학 모임(독서) <금빛수다>에서 언젠가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시집에 대해 수다를 한 적이 있었다.
1980년 백남기(우리가 아는 농민)의 요청으로 전두환 화형식 시위에 참여했다. 송기원은 네 번의 옥살이를 하였다. 둘째 딸이 백혈병에 걸리자 강단에서 내려와 딸을 보살폈다. 그러나 딸은 세상을 떠났다. 아프고 서럽다. 시인의 일상이 어떠했을지 심히 가늠하기 어렵다. 2024년 7월 31일 이승을 등졌다.
길
살아생전, 안타까웠던 것은
내가 단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다는 것.
세상의 길이란 길은 남김없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밖에 없을 때
살아생전,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길이라는 걸 몰랐다는 것.
두엄
썩을수록 따뜻한 두엄에서, 내가
잘 썩고 있다고 여기자.
무서리가 내린 초겨울 아침에, 두엄에서 네가
모락모락 하얀 김으로 피어오른다고 여기자.
온밤을 홀로 추위에 떨며 지샌 네가
두엄에서 무심코 걸음을 멈춘다고 여기자.
송기원(1947~2024, 전남 보성)
시집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1982), 〈마음 속 붉은 꽃잎〉(1990),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2006)
소설집 〈월행〉(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1994), 〈여자에 관한 명상〉(1996), <숨>(2021) 등
산문집 〈송기원의 뒷골목 맛세상〉(2006) 〈안으로의 여행〉(1999), 〈또 하나의 나〉(2000)와 소설 〈사람의 향기〉(2003) 등.
새삼 선생이 살아간 삶의 여정에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아픔이 스며든다. 선생의 시처럼 누구나 한때는 자랑스러운 자식으로, 부모로, 벗으로 그렇게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랴. 이제 단 하루라도 세상에 누가 안 되는 것이 됩니다. 모기며 쇠파리 한 마리에도 부끄러워 눈길을 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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